[천자칼럼] 주지 스님 내쫓은 해인사

입력 2023-01-19 17:46   수정 2023-01-20 00:34

경전을 공부하는 강원(승가대학), 참선하는 선원, 계율을 공부하는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 이런 사찰의 최고 지도자를 방장이라고 한다.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계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첫 총림이다. 일제강점기에 득세한 대처승(결혼한 승려)을 몰아내기 위한 8년간의 불교 정화 운동 끝에 1962년 현재의 조계종이 출범했고, 5년 뒤 해인총림 설치와 함께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1912~1993)이 방장에 추대됐다. 성철 스님이 그해 동안거 때 100여 일 동안 불교의 교리와 사상 등을 두루 강설한 것이 그 유명한 ‘백일법문(百日法門)’이다. 당시 법문에는 선방 스님은 물론 강원 학인, 절 살림을 맡은 사판승, 인근 사찰의 스님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해인사가 유명한 것은 팔만대장경 때문만이 아니다. 치열하기로 유명한 수행 풍토 덕분이다. 여름·겨울 석 달간의 안거 때는 선원뿐만 아니라 강원, 율원 스님들 모두가 1주일 동안 전혀 잠을 안 자고 수행하는 용맹정진에 참여한다. 스님들 사이에서 해인사 강원 출신이라고 하면 세속의 명문대 출신처럼 알아준다. 1980년대 이후 성철, 혜암, 법전 스님 등 세 명의 종정을 배출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해인사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주지 현응 스님의 성 추문 때문이다. 이전에도 성추행 의혹, 유흥업소 출입 의혹을 받았던 그가 최근에는 사복 차림으로 가발 쓴 비구니와 숙박업소를 드나들었다는 것이다. 의혹이 제기되자 현응 주지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잠적했다고 한다. 해인사는 현응 주지를 사찰에서 내쫓는 산문출송(山門黜送)의 징계를 의결했고, 조계종 총무원도 징계 방침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의혹 폭로 과정에서 불거진 파벌 간 대립, 방장 스님에 대한 불경한 언사, 유력 중진 스님들의 해외 골프 여행, 사태 수습을 위해 열린 임회(林會·의결기구)에서의 폭력사태 등 적폐가 종합세트로 펼쳐졌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불교 수행자들이 식사 때마다 외우는 오관게(五觀偈)의 첫머리다. 그 의미를 진심으로 되새겼으면 한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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